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돌프 누레예프 (문단 편집) === 마고 폰테인과의 오랜 파트너십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80ae4350256b1a89aa462be7aec5c72.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34821579166_dec83f5709_b.jpg|width=100%]]}}} || ||<-2> '''폰테인과 호흡을 맞추는 루돌프 누레예프'''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qG7JvpPGdEU, width=100%)]}}} || ||<-2> '''Tchaikowsky - Swan Lake - Rudolf Nureyev - Margot Fonteyn''' || 서방 세계에 정착한 그는 승승장구하며 전 세계에서 활동하게 된다. 누레예프는 영국의 전설적인 발레리나 마고 폰테인(Margot Fonteyn)과 20년 넘게 파트너로 호흡을 맞추면서 '[[지젤]]', '[[백조의 호수]]', '[[돈키호테]]', '공기의 요정',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수많은 무대를 같이 공연했다. 둘은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고 훌륭한 파트너로서 역할을 다 하였다.[* 당시 폰테인은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을 받고 있어서 뭔가 전환이 필요했는데, 소련에서 막 망명한 루돌프 누레예프와 파트너가 되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런데 폰테인이 누레예프보다 19살이나 연상이라, 폰테인은 "어미양이 새끼양과 같이 춤추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라고 말하며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함께 춤을 춰보니 호흡이 매우 잘 맞아서, 결국 그 시절 발레계 최고의 파트너로 인정받게 되었다.] 누레예프는 다른 무용수들과도 여러 공연을 했으나 최고의 공연은 마고 폰테인과 함께 했을 때였다. 훗날 두 사람은 따로 활동하게 되었지만 죽을 때까지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 폰테인이 경제적으로 힘들어 할 때 누레예프가 도와주기도 했다.[* 폰테인의 남편은 [[파나마]] 출신의 정치인이었는데, 정적에게 암살될 뻔했다가 살아났지만 총상으로 장애인이 되었다. 폰테인은 남편 치료비를 대느라 보통의 발레리나라면 은퇴했을 나이에도 계속 무대에 섰지만, 치료비가 너무 많이 들어 곤란한 처지가 되었다. 누레예프는 그런 사정을 알고 가끔 폰테인에게 거액의 돈을 보내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